시안을 여러 장 받아야 안심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시안 수는 안전판이 아니라 청구서의 항목이다. 시안 한 장을 더 만들 때마다 콘셉트 스케치, 색상 팔레트, 서체 조합, 목업, 프레젠테이션이 통째로 한 세트씩 더 붙는다. 방향이 정해지지 않은 채로 시안 3안을 요청하면, 스튜디오는 서로 다른 세 방향을 각각 완성도 있게 만들어야 하고 그 인건비가 견적서에 그대로 얹힌다. 시안이 많을수록 고를 폭이 넓어진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고르지 않은 나머지가 그대로 비용으로 남는 구조다. 시안 수를 줄이는 문제는 디자인 취향이 아니라 견적 구조를 바꾸는 문제다.
시안 3안이 비용에 붙는 방식
시안 1안과 3안은 작업 순서 자체가 다르다.
- 시안 1안: 리서치로 방향을 좁힌 뒤 그 방향 하나만 디자인, 응용까지 진행
- 시안 3안: 리서치 후 서로 다른 콘셉트 3개를 각각 디자인, 그중 하나를 골라 응용
3안 중 2안은 선택되지 않고 버려진다. 버려지는 2안도 스케치에서 끝나지 않는다. 색상, 서체, 로고 배치, 명함이나 패키지 목업까지 갖춰야 비교가 가능하기 때문에, 그 두 안에 들어간 작업 시간도 완성 안과 똑같이 인건비로 잡혀 견적에 실린다. 결과물은 하나인데 값은 셋을 다 치르는 셈이다.
방향부터 고르면 시안은 1안으로 끝난다
콘셉트 디자인에 들어가기 전에 방향 합의 단계를 따로 둔다. 이 단계에서는 무드보드로 톤을 맞추고, 키워드 우선순위로 브랜드가 먼저 챙길 가치를 정하고, 경쟁사 비교로 피해야 할 자리를 골라낸다. 완성된 디자인이 아니라 참고 이미지와 문서로 진행되기 때문에 리서치보다 짧게 끝난다. 방향이 합의된 뒤 시안 1안만 완성도 있게 만들면, 버려지는 작업이 없어 그만큼 비용도 준다. 세 방향에 나눠 쓸 시간을 한 방향에 모아 쓰다 보니, 결과물 완성도도 오히려 올라간다.
견적서에서 확인할 것
- 시안 수가 몇 안으로 적혀 있는지, 그 안 하나하나가 얼마짜리인지
- '방향 합의' 단계가 견적에 별도 항목으로 있는지. 있으면 시안 수를 줄이는 대신 이 단계를 넣어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 시안 재작업·추가 요청 횟수가 계약서에 몇 회로 적혀 있는지
- 채택되지 않은 시안의 저작권과 사용권이 어디로 가는지
이 네 가지를 미리 물어보면 시안 몇 안이 진짜 필요한지 스스로 가늠할 수 있다. 시안 비용에 정해진 시세는 없다. 법정 기준이 없어 당사자가 정한다. 몇 안을 받을지, 재작업은 몇 번까지인지를 계약서에 숫자로 못박아야 나중에 분쟁이 안 생긴다.
사진 · KATRIN BOLOVTSOVA · cottonbro studio · cottonbro studio · Mikhail Nilov · cottonbro studio (Pexel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