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브랜딩 기획서라고 하면 로고 시안 서너 개를 나란히 붙이고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결재자가 보고 싶은 건 시안이 아니라 근거다. 왜 지금 손대야 하는지, 어디까지 바꾸는지, 뭐부터 바꾸는지, 얼마가 드는지, 이 네 가지가 순서대로 있어야 결재판을 넘어간다. 순서가 뒤바뀌면 시안 미팅부터 다시 잡는 일이 반복된다.
시점부터 증명한다
"요즘 좀 낡아 보여서" 같은 감으로는 결재가 안 난다. 매출 곡선이 꺾인 시점, 신규 고객 비중이 줄어든 시점, 채용 면접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묻는 질문에 지원자가 머뭇거린 순간처럼 날짜가 붙는 사건을 모은다. 경쟁사가 최근 이름이나 로고를 바꿨다는 사실도 근거가 되지만, 이때는 상대의 변경 시점을 직접 확인한 날짜와 함께 적어야 한다. 확인 안 된 소문은 근거 목록에서 뺀다. 날짜 없는 근거는 근거가 아니라 인상이다. 리브랜딩 기획서 첫 장은 이 사건들을 시간순으로 나열하는 데서 시작한다.
바꿀 것과 남길 것을 나눈다
이름까지 바꾸는 리브랜딩과 색·서체만 정리하는 리브랜딩은 예산도 일정도 다르다. 나눠서 적는다.
- 이름과 로고를 통째로 바꾸는가
- 로고와 심볼만 새로 그리는가
- 색과 서체 톤만 맞추는가
- 매장·패키지 같은 접점만 정리하는가
뒤로 갈수록 예산과 기간이 줄어든다. 이름을 바꾸는 순간 상표 출원부터 새로 밟아야 해서 일정이 가장 길어진다. 어디까지 손댈지 먼저 정해야 다음 장의 예산이 나온다. 범위를 안 정하고 예산부터 쓰면 결재자가 항목을 하나씩 되묻는다.
순서를 정한다
전부 한 번에 바꾸는 회사는 드물다. 명함이나 사내 문서처럼 안에서 쓰는 것부터 정리하고, 간판·패키지·홈페이지처럼 밖에서 보이는 것으로 넘어가는 순서가 흔하다. 예를 들어 홈페이지는 새 이름으로 검색되도록 먼저 바꾸고, 매장 간판은 임대 계약 갱신 시점에 맞춰 나중에 바꾸는 식이다. 인쇄 재고가 남은 포장지처럼 소진 시점이 정해진 항목도 그 시점에 맞춰 순서를 다시 짠다. 순서를 못 박아 두지 않으면 실행 단계에서 담당자마다 다른 것부터 손댄다.
예산은 항목별로 쪼갠다
디자인, 인쇄와 제작, 사인물 교체, 웹사이트, 외부 컨설팅으로 나눠 적는다. 항목마다 최소 두 곳 이상 견적을 받아 나란히 붙이면 결재자가 스스로 비교할 수 있어 되묻는 질문이 줄어든다. 리브랜딩 비용은 업종과 규모마다 편차가 커서 통용되는 시세표가 없다. 법정 기준이 없어 당사자가 정한다. 근거 없는 "업계 평균" 문구를 넣느니 항목별 견적을 첨부하는 쪽이 결재자를 더 설득한다.
사진 · Antoni Shkraba · Mikhail Nilov · Matheus Bertelli · Matheus Bertelli · Hanna Pad (Pexels)







